
7월 미국 워싱턴에서는 ‘디지털 머니(블록체인 기반 전자화폐)’를 둘러싼 주도권 경쟁이 벌어졌다. 은행과 가상자산(암호화폐) 기업들이 ‘예금’의 소유·통제권을 두고 로비전을 벌였고, ‘스테이블코인 보상(스테이블코인을 보유·사용할 때 지급하는 이자·리워드)’이 쟁점이 됐다. 의회는 결론을 내리지 못한 채 가운데 끼어 있었다. 가상자산 진영은 은행 영역으로 파고들었고, 은행은 대체로 방어에 집중했다.
이번 주 은행들은 ‘인프라(금융망·결제 시스템의 기반 설비)’로 응답했다.
IBM은 목요일 ‘디지털 애셋 헤이븐(Digital Asset Haven·은행 내부에서 디지털 자산을 보관·관리하는 시스템) 플랫폼’을 스위프트(Swift·국제은행간통신협회가 운영하는 국제 결제 메시지 네트워크)의 블록체인 기반 ‘공유 원장(shared ledger·참여기관이 같은 거래기록을 함께 보는 장부)’과 연결했다. 이를 통해 은행은 기존 국제결제에 쓰던 메시지 표준인 ISO 20022(결제 지시·부가정보를 표준화한 국제 금융 메시지 규격) 형식으로 ‘토큰화 예금(tokenised deposits·예금을 블록체인상의 디지털 토큰 형태로 표현한 것)’ 이체를 지시할 수 있게 됐다. 같은 날 영국 7개 은행은 토큰화된 파운드화(스털링)로 실제 고객 결제를 처음 실행했다고 밝혔다. 의회 결정을 기다리지 않은 셈이다. IBM 기능은 아직 베타(정식 출시 전 시험 단계)이며 참여 은행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방향은 분명하다.
은행이 이미 돈 들여 바꿔놓은 ‘업그레이드’
IBM의 이번 조치는 기존 결제망을 대체한다기보다, 블록체인 기능을 은행이 쓰는 기존 인프라에 붙였다는 점에 의미가 있다.
은행들은 수년간 ISO 20022로 전환해 왔다. 이는 결제에 붙는 데이터를 더 풍부하게 담기 위한 ‘공통 언어’다. IBM의 어댑터(adapter·서로 다른 시스템을 연결해 주는 연동 소프트웨어)는 은행이 별도 블록체인 업무 흐름(workflow·업무 처리 절차)을 새로 만들지 않고, 같은 메시지 체계로 토큰화 예금 이체 지시를 할 수 있게 한다.
도입 장벽을 낮춘다.
대부분의 은행에 문제는 블록체인이 존재하느냐가 아니었다. 전통 금융 시스템에 맞춰 만들어진 운영·준법감시(컴플라이언스·규정 준수 체계)·리스크 관리 틀에 블록체인을 어떻게 끼워 넣느냐가 핵심이었다.
토큰화 예금은 절충안이다. 더 빠르고 ‘프로그램으로 조건을 걸 수 있는 결제(프로그래머블 결제·특정 조건이 충족되면 자동 실행되는 결제)’를 시험하면서도, 예금은 규제받는 은행의 ‘부채(은행이 예금자에게 갚아야 하는 돈)’로 남긴다.
토큰화, 실험에서 인프라로
이런 은행의 접근은 규제 환경 변화와도 맞물린다.
IBM 발표 이틀 전, 미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파생상품·선물 규제기관) 위원장 마이클 셀릭은 뉴욕 연준 행사에서 미국 시장이 “대규모 토큰화(mass tokenization·자산을 대거 토큰 형태로 전환)”와 “온체인 금융(onchain finance·거래·결제가 블록체인 상에서 이뤄지는 금융) 및 24시간·주7일 시장”에 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는 새 규정이나 일정을 제시한 것은 아니다. 다만 논의의 무게중심이 바뀌고 있음을 보여준다. 정책당국과 금융기관은 토큰화 자산이 기존 시장 안에서 어떻게 작동해야 하는지에 더 집중하고 있다.
규제 쟁점은 여전히 열려 있다. 토큰화는 은행이 발행하는 디지털 예금, 스테이블코인(stablecoin·법정화폐 등에 가치를 연동해 가격 변동을 낮춘 디지털 자산), 기타 블록체인 기반 자산 등 여러 형태가 가능하다. 모델에 따라 감독(감시·규제), 결제(최종 대금 정산), 유동성(필요할 때 현금화·이체 가능성), 접근성 문제도 달라진다.
디지털 머니의 ‘인프라 경쟁’
은행 주도 모델은 디지털 머니 인프라를 두고 벌어지는 경쟁의 일부다.
| 모델 | 발행 주체 | 핵심 장점 | 핵심 과제 |
| 토큰화 은행 예금 | 규제받는 은행 | 기존 은행 시스템 안에서 돈이 이동 | 은행 간 호환성(서로 다른 시스템이 연결돼 작동하는 능력) |
| 스테이블코인(USDT, USDC) | 민간 발행사 | 글로벌 블록체인 유동성 | 규제와 준비금(담보 자산) 감독 |
| 퍼블릭 블록체인(공개형 블록체인) | 탈중앙 네트워크(중앙 운영자 없이 다수가 운영) | 개방형 접근과 글로벌 결제 | 기관 채택과 규정 준수 |
핵심은 이들이 따로 발전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은행은 가상자산 네트워크가 앞서 만든 개념을 가져오고 있다. 프로그래머블 자산(조건을 걸어 자동 실행 가능한 자산), 블록체인 결제, 24시간 이체 등이 대표적이다.
동시에 가상자산 인프라는 전통 금융에 가까워지고 있다. 스테이블코인 발행사는 여러 블록체인으로 확장하고, 금융기관은 디지털 자산이 기관 간 결제 흐름(기관 결제·정산 과정)의 일부가 될 수 있는지 시험한다.
결국 쟁점은 블록체인이 금융에 들어오느냐가 아니라, 결제 ‘레일(rail·금융에서 자금이 이동하는 경로/망)’을 누가 쥐느냐: 은행인가, 민간 디지털 머니 발행사인가, 아니면 열린 네트워크인가로 옮겨가고 있다.
은행이 구조적으로 유리한 이유
토큰화 예금의 가장 강한 논리는 ‘은행이 이미 통제하는 것’을 바탕으로 한다는 점이다.
토큰화 예금은 규제받는 금융기관에 대한 청구권(돈을 돌려받을 권리)이다. 은행은 고객 관계, 규정 준수 의무, 그리고 대차대조표(은행 자산·부채를 정리한 재무제표) 연결을 유지한다.
이는 기업 결제에서 속도만 중요한 게 아니기 때문이다. 기업은 보통 다음을 필요로 한다.
- 신원 확인(KYC·고객 신원 확인),
- 규제 감독,
- 유동성 관리(필요 시 자금 동원),
- 회계 처리(장부상 인식 방식),
- 법적 확실성(분쟁 시 권리관계가 명확한지).
다국적 기업이 자회사 사이에서 자금을 옮길 때, 블록체인 이체는 기존 자금관리(트레저리·기업의 현금·유동성 관리) 시스템에 들어맞아야 의미가 있다.
이 지점에서 IBM의 스위프트 연동이 중요해진다. 은행에 ‘완전히 새로운 블록체인 절차’를 요구하는 대신, 블록체인을 기존 인프라에 연결된 또 하나의 결제 경로로 만들려는 시도다.
예금은 은행의 부채로 남고, 고객 확인도 유지되며, 기존 감독도 그대로 적용된다. 일요일에 자회사 간 자금을 옮겨야 하는 기업 재무담당자에게, 속도와 익숙한 보호장치의 조합은 스테이블코인이 따라가기 어렵다.
은행 영업시간 밖에서도 작동
은행 모델이 강한 이유는 ‘실험 단계를 넘어섰다’는 점이다. 스위프트는 7월 17개 은행과 함께 블록체인 원장을 가동했고, 9월 초에는 씨티가 퍼스트아부다비은행(FAB)·OCBC와 함께 달러를 이동시켰다. 이는 전통적인 ‘컷오프 시간(cut-off·업무 마감시간, 그 이후 지시는 다음 영업일 처리)’에 묶여 있던 코레스폰던트 뱅킹(해외 송금을 위해 은행들이 서로 계좌를 통해 결제하는 방식) 밖에서 토큰화 예금 이체가 가능함을 보여줬다.
영국의 토큰화 파운드 실험은 국내 결제에 초점을 맞췄다. 바클레이즈, HSBC, 로이즈, 내트웨스트 등이 포함된 7개 참가 기관은 재융자(리모기지·대출 갈아타기) 지급과 소비자 거래 같은 사례를 시험했고, 비슷한 시기에 의미 있는 단계에 도달했다.
은행에 매력적인 점은 분명하다. 예금은 은행 부채로 남고, 고객 확인은 유지되며, 기존 감독이 적용된다. 주말에 자회사 간 자금을 옮겨야 하는 기업에게 ‘더 빠른 이동+기존 통제’가 토큰화 예금의 핵심 가치다.
은행 모델의 한계
첫째 한계는 ‘최종 결제(파이널 세틀먼트·거래가 되돌릴 수 없게 최종 확정되는 돈의 정산)’다. 스위프트 원장은 24시간 결제 지시를 조정하지만, 최종 정산은 여전히 중앙은행 결제망(중앙은행이 운영하는 거액결제 시스템 등) 같은 기존 시스템을 통과한다. 이 시스템은 영업시간에 묶여 있다. 그 공백 시간에는 시스템이 다시 열릴 때 각 은행이 결제를 이행할 것이라는 ‘상호 신뢰’에 의존하게 된다. 파일럿(시범사업)에서는 가능하지만, 규모가 커지면 야간·주말에 익스포저(exposure·상대방이 결제를 못 하면 발생하는 위험)가 쌓일 수 있다.
둘째는 ‘조각화(파편화)’다. 토큰화 예금은 발행 은행에 대한 청구권이므로 은행 내부에서는 잘 움직이지만, 은행 밖으로 나가면 불편해진다. 스위프트, 영국, 미국의 TCH(The Clearing House·미국 은행들이 만든 지급결제 기관) 등 각자 별도 시스템을 만들면, 서로 연결되지 않는 ‘빠른 차선’만 늘어날 수 있다. 스위프트는 과거 결제 메시지에서 그랬듯 연결고리 역할을 노리지만, 은행들이 각자 네트워크를 지키기보다 참여를 선택해야 성립한다.
셋째는 규모다. 17개 파일럿 은행은 스위프트 네트워크의 약 1만2500개 기관 중 일부에 불과하다. 시범사업은 12월까지이며, 거래량도 의도적으로 작다. 반면 스테이블코인은 이미 약 3000억달러 규모로, 언제든 온체인에서 결제된다. USDC 토큰은 어디로 가도 같은 자산이다. 은행 토큰은 그런 ‘이동성(포터빌리티·어디서나 같은 방식으로 쓰이는 성질)’을 확보해야 한다. 스테이블코인은 출발부터 이를 갖고 있었다.
앞으로 ‘확장성’은 무엇이 좌우하나
은행 모델은 탄력을 받고 있다. 두 개의 주요 시장에서 이미 가동됐고, 은행이 운영하던 시스템과 함께 돌아간다. 규제당국도 토큰화·상시(24/7) 시장을 공개적으로 거론한다. 남은 검증은 두 가지다. ‘24시간 결제 지시’만으로 충분한지(최종 정산이 여전히 영업시간이면 의미가 제한될 수 있음), 그리고 은행별 네트워크가 경쟁이 아니라 연결로 갈지다.
향후 몇 달이 분수령이다. 12월 이후 파일럿을 확대할지에 대한 스위프트의 판단은 은행들이 투자할 만큼의 가치를 보는지 보여준다. IBM이 고객사를 공개하면 어댑터에 대한 실제 수요가 확인된다. 영국 그룹이 다음 단계에서 토큰화 예금으로 디지털 자산 결제를 정산하는 실험은 ‘은행의 돈’과 ‘가상자산’이 직접 맞붙는 지점이 된다.
VT Markets와 함께 보기
이 인프라를 만드는 기업들은 상장사지만, 주가가 파일럿 하나로만 움직이는 것은 아니다. VT Markets에서는 IBM과 씨티(CITI), 그리고 영국 토큰화 파운드 실험에 참여한 영국 은행 4곳인 바클레이즈(BARC), HSBC, 로이즈(LLOY), 내트웨스트(NWG) 주식 CFD(CFD·차액결제거래, 실물 주식을 보유하지 않고 가격 변동분만 정산하는 파생상품)를 거래할 수 있다.
Tap for Trader’s Takeaway!
IBM의 스위프트 블록체인 연동이란?
IBM이 ‘디지털 애셋 헤이븐’ 플랫폼을 스위프트의 블록체인 기반 공유 원장과 연결해, 은행이 ISO 20022 형식의 기존 결제 메시지로 토큰화 예금 이체를 지시할 수 있게 한 것이다.
ISO 20022란?
ISO 20022는 은행이 결제 지시를 어떤 형식으로 작성하고 어떤 데이터를 붙일지 정한 글로벌 표준이다. 스위프트가 2025년에 네트워크를 이 표준으로 전환했기 때문에, 같은 형식을 쓰는 블록체인 어댑터는 은행 입장에서 도입이 쉽다.
은행은 왜 토큰화 예금에 블록체인을 쓰나?
정산 속도와 ‘프로그램으로 조건을 걸 수 있는 처리(프로그래머블 처리)’를 개선하되, 예금을 기존 금융 시스템 안의 ‘규제받는 은행 부채’로 유지하려는 목적이다.
은행끼리 토큰을 직접 연결하면 되지 않나?
가능은 하다. 하지만 은행이 하나 늘 때마다 다른 모든 은행과 개별 계약·연결이 필요해 연결 수가 빠르게 늘어난다. 이는 코레스폰던트 뱅킹의 복잡한 구조를 다시 만든다. 스위프트 같은 공유 네트워크는 이를 줄일 수 있지만, 충분한 은행이 참여해야 한다.
토큰화 은행 예금과 USDT·USDC 같은 스테이블코인의 차이는? 토큰화 예금은 규제받는 은행이 발행한다. 스테이블코인은 민간 기업이 발행하며, 블록체인 네트워크를 오가며 쓰이도록 설계된 디지털 머니다.
스위프트 블록체인 원장은 XRP나 ETH를 쓰나?
아니다. 이 원장은 허가형(permissioned·참여자가 제한된)이며 자체 암호화폐가 없다. 이더리움 기반 네트워크인 리네아(Linea)의 기술을 활용했지만, 은행이 그 위에서 옮기는 것은 암호화폐가 아니라 토큰화 예금이다.
규제당국은 은행의 블록체인 도입을 지지하나?
규제당국은 토큰화와 온체인 금융을 더 자주 논의하고 있다. 정책당국은 디지털 자산을 어떻게 기존 시장에 통합하고 감독하며 확장할지를 중점적으로 보고 있다.
24시간·주7일 국경 간 은행 결제는 언제 널리 가능해지나?
정해진 날짜는 없다. 스위프트 파일럿은 2026년 말까지 진행되며, 전체 확대는 결과에 달려 있다. ‘진짜 24시간 최종 정산’을 하려면 중앙은행 결제 시스템도 운영시간을 늘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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