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값은 수요일 0.30% 하락했으며, 금 현물(XAU/USD)은 미국의 생산자 투입 가격(기업이 원자재·중간재를 사는 가격)이 4년 만에 최고 수준으로 오른 뒤 4,699달러에서 거래됐다. 4월 생산자물가지수(PPI·생산 단계에서의 물가 상승률)는 전년 대비 6% 상승해 3월(4.3%)보다 높아졌다. 변동이 큰 식품·에너지를 제외한 근원 PPI는 전년 대비 5.2%로, 3월(4%)과 시장 예상(4.3%)을 웃돌았다.
미국 소비자물가상승률(CPI·가계가 실제로 사는 상품·서비스 가격의 상승률)은 전년 대비 3.8%로 2023년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미 국채금리는 상승했는데, 10년물 금리가 2.5bp(bp·0.01%포인트) 올라 4.488%를 나타냈다. 달러 인덱스(주요 6개 통화 대비 달러 가치)는 0.21% 상승한 98.49였다. 프라임 터미널 데이터에 따르면 시장은 연준(Fed·미 중앙은행)이 2026년까지 기준금리를 동결할 것으로 보고 있다.
지정학적 위험과 시장 분위기
위험자산 선호 심리(리스크 센티먼트)는 이틀째 약세를 보였다. 미국-이란 전쟁 영향이 이어지는 가운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미·중 정상회담을 위해 베이징에 도착했다. 테헤란(이란)은 제재 해제, 동결 자금 해제, 전쟁 피해 배상, 호르무즈 해협(원유 수송의 핵심 해상 요충지) 주권 등을 요구하고 있다고 밝혔다.
금값은 4,650~4,700달러 박스권에 머물렀다. 위쪽(저항)으로는 4,700달러와 50일 단순이동평균선(SMA·최근 50일 평균 가격) 4,749달러, 100일 SMA 4,780달러가 언급됐다. 아래쪽(지지)으로는 20일 SMA 4,683달러 부근, 4,600달러, 그리고 5월 4일 저점인 4,500달러 수준이 거론됐으며, RSI(상대강도지수·가격 상승/하락의 힘을 0~100으로 보여주는 지표)는 50 아래에 있다.
인플레이션(물가 상승)이 쉽게 꺾이지 않고 미국-이란 충돌이 이어지면서, 시장은 전형적인 ‘안전자산 수요 vs 강달러’ 힘겨루기 국면이다. 지정학적 긴장은 금에 우호적이지만, 생산자물가 급등으로 연준이 매파적(금리 인상에 더 무게를 두는 성향) 태도를 유지하면서 달러가 강해지고 금의 상승 폭이 제한되고 있다. 이런 환경에서는 변동성(가격 출렁임)이 당분간 높은 수준을 유지할 가능성이 크다.
금 파생상품(기초자산 가격에 따라 가치가 변하는 선물·옵션 등) 투자자 관점에서는 4,700달러 아래에서의 공방이 이어지는 만큼, 단기적으로는 횡보 또는 하락 쪽에 무게가 실린다. RSI가 보여주는 약세 흐름을 감안하면, 4,600달러 또는 4,500달러 지지선 부근을 행사가(옵션을 살 수 있는 가격)로 한 풋옵션(가격 하락 시 이익이 나는 옵션) 매수는 손실 한도가 정해진(defined-risk) 방식으로 추가 하락에 대비하는 전략이 될 수 있다. CBOE(시카고옵션거래소) 데이터에서는 주요 금 ETF(상장지수펀드) 풋옵션 미결제약정(아직 청산되지 않은 계약 수)이 최근 한 달 15% 늘어, 기관 투자자들의 하방 방어 수요가 커졌음을 시사한다.
2022~2023년에도 연준이 40년 만의 고물가를 잡기 위해 공격적으로 금리를 올리면서 비슷한 흐름이 나타났다. 당시 달러 강세는 글로벌 불확실성이 큰 상황에서도 금에 부담으로 작용했다. 현재도 연준 인사들이 추가 금리 인상 필요성을 공개적으로 언급하고 있어, 국채금리와 달러가 쉽게 꺾이기 어려운 여건이다.
역사적 유사 사례와 포지셔닝
다만 미국-이란 전쟁은 전망을 단숨에 바꿀 수 있는 ‘변수’다. 2022년 초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직후 몇 주 동안 달러가 강한데도 금값이 8% 넘게 급등했던 사례처럼, 지정학적 충격은 금을 빠르게 끌어올릴 수 있다. 이에 따라 만기가 긴(장기) 외가격(out-of-the-money·현재 가격에서 바로 이익이 나지 않는) 콜옵션(가격 상승 시 이익이 나는 옵션)을 일부 보유하는 것은, 전쟁 격화나 미·중 정상회담 결렬 같은 돌발 상황에 대비하는 비교적 저비용 헤지(위험 회피) 수단이 될 수 있다.
금의 기초 체력(하방 지지)도 무시하기 어렵다. 중앙은행(각국 통화를 발행·정책금리를 결정하는 기관) 수요가 계속 강한 영향이다. 2024~2025년 동안 신흥국 중앙은행들이 꾸준히 외환보유액(국가가 보유한 달러 등 외화 자산)에 금을 편입해 왔고, 올해도 그 흐름이 이어져 2026년 1분기에 전 세계적으로 290톤을 추가 매입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기반 수요’는 달러가 더 오르더라도 금값이 완전히 무너지는 상황을 막는 바닥 역할을 할 가능성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