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TI(서부텍사스산원유) 가격은 3거래일 연속 하락했지만, 하락세가 강하게 이어지지는 않았다. 아시아 장 초반 배럴당 88.00달러 바로 아래에서 거래되며 약 0.40% 내렸다. 다만 3주여 만의 저점인 85.00달러 아래에서 반등한 뒤다.
가격은 미국-이란 긴장 완화 기대와 휴전이 장기화될 수 있다는 관측에 압박을 받았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이란과의 전쟁이 막바지로 갈 수 있다고 말했고, 백악관은 합의에 낙관적이라고 밝혔다. 수일 내 2차 협상이 열릴 수 있다는 보도도 나왔다.
호르무즈 리스크가 WTI 하단을 지지
호르무즈 해협을 둘러싼 위험과 중동 지역 긴장으로 하락 폭은 제한됐다. 이란은 추가 협상 조건을 내걸었고, 이스라엘 총리는 휴전에 대한 확약이 없다고 말했다. 또 이스라엘군(IDF)은 보안 구역을 확대하라는 지시를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의 이란 항만 해상 봉쇄(군함 등으로 항만 출입을 통제해 물자·원유 수출입을 막는 조치)가 지난주 토요일 이슬라마바드 회담 종료 이후 전면 시행에 들어갔다는 보도도 나왔다. 이란 합동군사령부는 봉쇄가 해제되지 않으면 걸프만(페르시아만) 교역을 중단할 수 있다고 경고해 공급 차질(원유 공급이 줄거나 막히는 상황) 위험을 키웠다.
WTI는 미국산 원유의 대표 가격(기준유)이며, 가격은 주로 수급(공급과 수요), 지정학(전쟁·분쟁 같은 국제정치 변수), 달러 가치, OPEC(석유수출국기구) 결정, 그리고 주간 재고 보고서에 의해 움직인다. API(미국석유협회) 재고는 화요일, EIA(미국 에너지정보청) 재고는 수요일 공개된다. 두 보고서는 75%의 경우 결과 차이가 1% 이내로 비슷하게 나온다.
수급과 포지션이 변동성을 키운다
수급 측면에서는 수요 신호가 예상보다 강하다. 이번 주 EIA 보고서는 재고가 210만 배럴 감소(시장 예상과 반대로 줄어든 ‘서프라이즈 감소’)했다고 보여줬다. 또 중국의 3월 제조업 PMI(구매관리자지수: 50 이상이면 경기 확장, 50 미만이면 위축)도 51.2로 견조했다. 이는 외교 교착만을 근거로 한 약세 심리를 일부 상쇄한다.
그럼에도 갑작스러운 외교적 돌파가 나오면 현재 가격에 붙어 있는 위험 프리미엄(분쟁 등 위험을 반영해 추가로 얹히는 가격)을 빠르게 지울 수 있다는 점은 변수다. 또한 OPEC+(OPEC과 러시아 등 산유국 연합)이 감산(생산량을 줄이는 조치)을 유지하고 있지만, 일부 핵심 회원국의 이행(준수) 문제가 불거지면 공급이 예상보다 늘 수 있다. 이런 불확실성은 가격이 95달러 위로 쉽게 치고 올라가지 못하는 배경이 된다.
이처럼 호재와 악재가 맞서는 구간에서는 변동성이 커져 방향성 베팅(상승·하락 한쪽에 강하게 거는 거래)이 더 위험해진다. 옵션(정해진 기간 내 특정 가격에 사고팔 수 있는 권리) 시장에서는 프런트-먼스(가장 가까운 만기) 계약의 내재변동성(옵션 가격에 반영된 예상 변동성)이 35% 수준으로 높다. 트레이더는 한쪽 방향을 단정하기보다, 큰 가격 변동에서 수익을 노리는 전략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달러 약세도 유가에 우호적으로 작용한다. 달러인덱스(DXY: 주요 통화 대비 달러 강도를 나타내는 지수)가 103.5 부근으로 내려오면서, 다른 통화를 쓰는 매수자 입장에서는 원유가 상대적으로 싸져 수요를 지지한다. 이 요인은 현재 가격 하단을 조용히 떠받치는 역할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