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로존 지표와 유럽중앙은행(ECB) 발언을 종합하면, 이란 전쟁과 에너지 가격 급등(에너지 쇼크)이 성장과 투자심리를 훼손하면서 유로화의 하방 위험이 커지고 있다. 유로화는 주요 통화 가운데 가장 약세를 보였고, 저금리 통화인 일본 엔화(JPY), 스웨덴 크로나(SEK), 뉴질랜드 달러(NZD)에서도 자금 유출이 함께 나타났다. (저금리 통화: 금리가 낮아 이자 수익이 적은 통화)
ECB 정책결정기구인 운영위원회(Governing Council) 위원 디미타르 라데프는 유로존 경기 전망이 예상보다 더 나빠질 수 있다고 말했다. 불확실성이 커지고, 충격이 인플레이션 기대(향후 물가 상승에 대한 시장·가계의 예상)에 더 강하게 전달될 수 있다는 점도 언급했다. 그는 더 나쁜 시나리오가 현실화할 가능성이 커졌다고 평가했다.
유로화에 커지는 위험
라데프는 이번 충격이 임금, 기업 이익률(매출 대비 이익 비율), 인플레이션 기대에까지 번지면(2차 파급), 대응을 미룰수록 비용이 커져 더 빠른 정책 대응을 뒷받침할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ECB 4월 회의에서 명확한 결정을 내릴 만큼 데이터가 충분할지는 아직 이르다고 했다.
운영위원회 위원 피에르 분슈는 에너지 쇼크가 이어지면 ECB가 이르면 4월부터 기준금리를 올리고(금리 인상), 이후에도 추가 인상을 지속할 필요가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3월 물가상승률은 2.5%로 높아졌고, 그는 임금 등으로 물가 상승이 다시 번지는 ‘2차 효과(Second-round effects: 에너지·원자재 가격 상승이 임금과 서비스 가격 등으로 재확산되는 현상)’가 나타나면 물가가 더 오를 수 있다고 경고했다.
유로화는 자금이 유럽에서 빠져나가 고금리 통화로 이동하면서 계속 약세다. 이란 전쟁과 이에 따른 에너지 쇼크는 유럽의 성장과 심리에 뚜렷한 하방 압력을 주고 있다. ECB는 경기 둔화와 물가 상승이 동시에 나타나는 국면에서 어려운 선택을 강요받고 있다.
에너지 비용이 높은 수준에서 유지되면서 실물 지표에도 충격이 나타나고 있다. 브렌트유는 지난해 말 분쟁 이후 40% 넘게 급등해 배럴당 125달러 위에서 거래되고 있다. 제조업 타격이 크며, 특히 독일은 공장 수주(Factory orders)가 3개월 연속 감소했다. 최근 유로존 제조업 PMI(구매관리자지수: 50 미만이면 경기 위축을 의미)는 45.8로, 위축이 심화되고 있음을 시사한다.
시장 변동성과 정책의 딜레마
ECB 내부에서는 높은 에너지 비용이 임금과 근원물가(Core prices: 에너지·식료품 등 변동성이 큰 품목을 제외한 물가)로 번지는 2차 인플레이션 효과를 경계하고 있다. 이들은 2022년에 초기 인플레이션 급등에 대응이 늦었다는 ‘정책 실기’ 논란을 언급하며, 그 기억이 경기 약화에도 불구하고 더 강경한 기조(매파적 스탠스: 금리 인상을 선호하는 태도)로 기울게 하고 있다.
중앙은행은 금리 인상에 적극적인데 경기는 나빠지는 충돌이 시장 불확실성을 키우고 있다. 유럽 증시 변동성은 상승 중이며, VSTOXX 지수(유로존 대표 변동성 지수)는 2025년 4분기 분쟁 격화 이후 30% 이상 올랐다. 파생상품(기초자산 가격에 따라 가치가 변하는 금융상품) 시장에서는 옵션 프리미엄(옵션 가격)이 비싸지고 있는데, 이는 급격한 가격 변동 위험이 커졌다는 뜻이다.
경기 부담을 고려하면 유로화는 추가 하락 압력이 우세하며, 특히 미 달러 대비 약세 가능성이 크다. EUR/USD 환율은 지난해 가을 1.10을 웃돌던 수준에서 최근 1.05 아래로 내려왔고, 추가 하락 가능성이 남아 있다. 이에 따라 유로 풋옵션(하락에 베팅하는 옵션) 매수나 약세 풋 스프레드(서로 다른 행사가의 풋옵션을 함께 매매해 비용과 위험을 제한하는 전략) 같은 하방 전략을 고려할 수 있다.
앞으로는 유로존 속보 CPI(소비자물가지수)와 임금 협상 관련 소식을 면밀히 봐야 한다. ECB는 4월 금리 결정이 데이터에 달려 있으며(데이터 디펜던트: 지표에 따라 결정), 인플레이션이 고착(임금·가격 결정에 물가 상승이 ‘당연한 것’으로 반영되는 상태)되는지 여부가 핵심이라고 시사했다. 임금 상승률이 빨라지는 신호가 나오면, 경기 둔화 국면에서도 금리 인상을 선택할 수 있어 유로화에는 추가 부담이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