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보뱅크(Rabobank) 전략가들은 정유 제품(원유를 정제해 만든 휘발유·경유·항공유 등) 공급 병목(중간 단계에서 흐름이 막혀 전체 공급이 지연되는 현상) 위험을 평가하기 위해 글로벌 석유 공급망을 일부 단순화해 만든 모델을 활용했다. 이 모델은 실제 재고(비축량)를 정확히 예측하기보다, 수급(공급과 수요) 균형을 맞추려면 어떤 변화가 필요한지(공급 증대 또는 수요 감소 규모)를 추정한다.
3월부터 최대 3개월간 호르무즈 해협(중동 산유국 물량이 지나가는 핵심 해상 요충지)에서 차질이 발생할 경우, 유럽은 석유 제품의 ‘실물 부족’ 가능성이 크지 않다. 대신 시장 조정은 주로 가격 상승으로 나타날 전망이다.
단기 차질의 의미
해협이 약 1년 가까이 막히면 유럽의 완충재(비축유·재고 등 위기 때 버틸 수 있는 여력)가 소진된다. 이 경우 수요 감소가 불가피하며, 특히 항공유(제트연료), 나프타(석유화학 원료로 쓰는 경질 유분), 중유(선박·발전 등에 쓰는 중질 연료)에서 압력이 커질 수 있다.
영향은 산업별로 다르게 나타나며, 항공, 물류, 항공화물 의존도가 높은 업종이 가장 취약하다. 아시아와 오세아니아 일부 지역은 재고가 낮고 정유 능력(원유를 제품으로 바꿀 수 있는 설비·처리량)이 제한적이며 중동 공급 의존도가 높아 부족 위험이 더 커질 수 있다.
호르무즈 해협 긴장이 재점화되면서, 향후 몇 주 동안 석유시장이 ‘가격 급등 중심’의 충격을 겪을 위험이 뚜렷하다는 판단이다. 최대 3개월의 단기 봉쇄는 유럽에서 실물 부족을 만들기보다는 가격을 끌어올릴 가능성이 크다. 최근 뉴스로 브렌트유(유럽·아프리카산 원유 중심의 국제 기준유)가 배럴당 95달러를 넘어서는 흐름을 보이면서, 시장은 이런 가능성을 일부 가격에 반영하기 시작했다.
시장 변동성에 대비한 포지셔닝
변동성 확대에 대비할 필요가 있다. 원유 옵션(정해진 기간에 미리 정한 가격으로 사거나 팔 수 있는 권리)에서 시장이 예상하는 변동성인 ‘내재 변동성’을 나타내는 OVX 지수(원유 변동성 지표)가 이미 45까지 급등했다. 다음 분기 만기의 원유 선물에 대해 ‘외가격 콜옵션(현재 가격보다 높은 행사가를 살 수 있는 권리)’을 매수하는 전략은 손실 한도가 정해진(프리미엄만 잃는) 방식으로 급등 가능성에 베팅할 수 있다. 이는 단기 차질이 공급 부족보다 가격에 먼저 반영된다는 분석을 활용한다.
정유 제품 시장에서는 특히 항공유와 나프타가 더 직접적인 기회가 될 수 있다. 올해 전 세계 항공 수요가 사상 최고 수준을 보이며 항공유 수요가 2025년 이후 약 8% 늘어난 것으로 나타나, 공급 차질이 발생하면 빠듯한(여유가 적은) 시장에 충격이 더 크게 전달될 수 있다. 따라서 난방유(주로 경유 계열의 중간유분 제품)나 가스오일 선물(경유·난방유와 유사한 중간유분)을 매수하는 강세 포지션을 검토할 수 있다. 이들 가격은 항공유 같은 중간유분과 함께 움직이는 경우가 많다.
차질이 3개월을 넘어 장기화될 가능성이 높다면, 전략은 실물 부족을 반영하는 방향으로 바뀐다. 1년 봉쇄 시나리오에서는 유럽의 완충재가 소진되며, 최근 유로일스톡(Euroilstock·유럽 석유 재고 통계) 데이터로는 현재 재고가 5년 평균을 밑돌고 있다. 이런 환경에서는 항공화물과 여행에 크게 의존하는 업종(일부 기술·물류 기업 등)을 ‘하락(약세) 포지션’으로 가져가 위험을 상쇄(헤지·반대 방향 자산으로 손실을 줄이는 전략)하는 접근이 유효할 수 있다.
2019년 유조선 공격 사례는 일부 참고가 되지만, 현재 시장은 더 취약하다는 평가다. 당시 유가가 20% 급등했다가 빠르게 되돌렸는데, 글로벌 재고가 더 두터웠기 때문이다. 2025년까지 이어진 재고 감소(재고가 계속 줄어든 흐름) 이후에는 장기 충격을 흡수할 여력이 줄어, 이번에는 가격 반응이 더 오래갈 수 있다는 해석이다.
분석은 아시아 일부 지역의 위험이 더 크다는 점도 시사한다. 이는 지역 간 가격 차이를 활용하는 거래(차익거래·한 지역에서 싸게 사 다른 지역에서 비싸게 파는 방식) 기회로 이어질 수 있다. 브렌트유와 두바이유(중동산 원유 중심의 아시아 기준유) 가격 차이(스프레드·두 기준 가격의 격차)를 모니터링할 필요가 있다. 호르무즈 해협이 장기간 봉쇄되면 이 격차가 크게 벌어질 수 있으며, 대서양 분지(미주·유럽 쪽) 원유가 상대적으로 강세를 보일 것에 베팅한 투자자에게 유리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