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 의회는 가상자산(암호화폐)의 규칙을 누가 만들지 아직도 다투고 있다. 하지만 그 규칙의 영향을 가장 크게 받는 기업들은, 자신들이 앞으로 운영하게 될 ‘새 금융 시스템’의 기초 공사를 이미 시작했다.
2026년 7월 기준 미국의 가상자산 정책은 이 지점에 서 있다. ‘CLARITY 법안’(디지털 자산 시장 명확화 법안)은 미국 디지털 자산 시장의 틀을 정리하려는 목적이었지만, 수사기관의 우려, 정치적 갈등, 스테이블코인(가치가 달러 등 특정 자산에 연동되도록 설계된 코인) ‘수익’(이자처럼 보이는 보상) 논쟁에 발이 묶였다.
은행이 ‘토큰화 예금’(은행 예금을 블록체인 기반 토큰 형태로 발행·이체할 수 있게 만든 예금)을 만들고, 가상자산 기업은 규제받는 금융권으로 더 가까이 들어오고 있다. 스테이블코인 발행사는 시스템 밖이 아니라 안에서 자리 잡으려 한다. 미국 대형 은행들과 최대 스테이블코인 발행사가 같은 ‘돈’을 두고 서로 다른 결제망(결제 레일·지급결제 인프라)을 조용히 구축 중이며, 승부처는 ‘고객 접점(고객 관계)’을 누가 쥐느냐에 달렸다.
CLARITY 법안, 또다시 지연
‘디지털 자산 시장 명확화 법안’(CLARITY Act)은 2025년 7월 하원을 294대 134로 통과했다. 상원 은행위원회도 5월에 심사를 진전시켰고, 6월 초에는 상원 본회의 표결 일정(캘린더)에 올라 ‘표결 가능’ 상태가 됐다.
그러나 이후 멈췄다. 백악관은 비공식적으로 7월 4일 서명을 목표로 했지만, 그 시한은 표결 일정도 없이 조용히 지나갔다. 예측시장(사건 발생 확률을 가격으로 반영하는 시장)은 2월에 통과 확률을 82%로 보다가 최근 42~50%로 낮췄다.
발목을 잡는 쟁점은 세 가지다.
- 수사기관의 우려 개발자 보호 조항이 가상자산 범죄 수사를 어렵게 만들 수 있다는 지적.
- 정치·윤리 논란 트럼프 대통령과 연계된 가상자산 관련 소득 10억달러 이상 공개가 협상과 초당적 지지를 복잡하게 만들었다.
- 스테이블코인 규정 플랫폼이 ‘이자처럼 보이는 수익’을 제공해도 되는지에 대한 이견.
상원은 공화당이 53석을 확보하고 있지만, 법안을 전진시키려면 민주당 최소 7표가 필요하다. 양측 입장은 그대로다. 다음 분기점은 상원의 8월 휴회다. 이 시점을 놓치면, 이후 일정이 다른 현안으로 빠르게 채워져 연내 통과 가능성은 더 낮아진다.
핵심 쟁점: 스테이블코인 ‘수익’
가장 큰 충돌은 ‘가상자산을 합법으로 볼지’가 아니다. 2025년 통과된 ‘GENIUS 법’(스테이블코인 발행사가 이용자에게 이자를 직접 지급하는 것을 금지한 법)으로 큰 방향은 정리됐다.
은행, 가상자산 기업, 의원 모두 “규정이 명확해야 한다”고 말한다. 은행이 우려하는 지점은 CLARITY 법안이 거래소·플랫폼이 ‘이자’라고 부르지 않으면서도 사실상 이자처럼 작동하는 보상(리워드)을 제공할 여지를 남길 수 있다는 점이다.
| 이해관계자 | 원하는 것 | 왜 중요한가 |
|---|---|---|
| 은행 | 예금을 은행 시스템 안에 묶어두기 | 예금은 대출 재원이고, 결제 기능과 수익성의 기반이다. |
| 가상자산 플랫폼 | 스테이블코인에 ‘이자 유사 보상’ 허용 | 이용자를 끌어오고 디지털 결제 생태계를 키울 수 있다. |
| 의회 | 규제의 ‘빈틈(루프홀, 법망의 허점)’ 없이 명확한 규칙 마련 | 혁신과 소비자 보호, 금융 안정 사이 균형이 필요하다. |
코인베이스는 현재 USDC 보상 수익으로 연간 약 13억5000만달러를 벌어들이는 것으로 추정된다. 미국은행협회(ABA)는 이 구조가 “전통적 예금이 스테이블코인 지갑(코인을 보관·이체하는 계정)으로 빠져나갈 통로”를 만들 수 있다고 본다.
가상자산 플랫폼의 시각은 다르다. 소비자 보호가 아니라 은행 보호, 즉 경쟁 차단에 가깝다는 주장이다.
스테이블코인이 ‘현금 관리 수단’(돈을 잠시 보관하며 유동성을 유지하는 방식)처럼 보이기 시작하면, 대부분의 이용자는 그 수익이 ‘이자’인지 ‘보상’인지 ‘인센티브’인지 따지지 않는다. 돈을 언제든 쓸 수 있으면서(유동성) 동시에 뭔가가 붙는지를 본다.
결국 단순한 시장 경쟁이다. 원래라면 요구불예금(언제든 찾을 수 있는 예금)에 남아 있었을 돈이 스테이블코인 지갑으로 이동할 수 있다. 누구가 그 이동을 유도하는 수익을 제공하느냐가 핵심이다.
은행 입장에서 이는 작은 상품 이슈가 아니다. 예금 기반(예금 잔액의 규모와 안정성) 가치와 직결된다. 아무것도 바꾸지 않아도 수익을 준다면, 일반 은행 계좌에서 스테이블코인 지갑으로 옮길 유인이 커진다.
한 문장으로 정리
은행: 블록체인 기술은 쓰되 예금은 뺏기고 싶지 않다.
가상자산 기업: 고객이 더 나은 수익을 얻는다면 예금 이동을 막아서는 안 된다.
은행들도 자체 해법을 만든다
은행들은 의회가 경계선을 정할 때까지 기다리지 않는다.
JP모건, 씨티, 뱅크오브아메리카, 웰스파고 등 10여 곳이 넘는 은행이 ‘더클리어링하우스’(미 은행들이 소유한 지급결제 공동 인프라 기관)를 통해 공동 ‘토큰화 예금 네트워크’를 구축 중이다. 목적은 예금을 은행 시스템 안에 묶어두는 것이다. 스테이블코인으로의 이탈을 막겠다는 의미다.
출시는 2027년 상반기가 목표다.
JP모건은 더 앞서 있다. ‘키넥시스(Kinexys)’ 플랫폼은 2020년부터 기관 대상 블록체인 결제(블록체인 네트워크에서 실시간에 가깝게 자금을 옮기고 정산하는 방식)를 처리해 왔다. 또 코인베이스의 공개 블록체인 네트워크인 ‘베이스(Base)’로 예금 토큰을 확장했다.
이 조합은 이례적이지만 의미가 크다. 대형 은행이 крупней 가상자산 거래소 중 하나와 연결된 인프라를 활용하면서도, 동시에 스테이블코인 경쟁으로부터 자기 예금 기반(예금 사업)을 지키려 한다.
씨티도 비슷한 길을 택해 뉴욕·런던·홍콩에서 실시간 정산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기술 자체에 대한 거부감은 줄어들고 있다. 남은 쟁점은 고객 접점의 통제권이다.
가상자산 기업은 전통 금융을 흡수한다
반대 방향에서도 같은 흐름이 진행 중이다.
스탠다드차타드는 최근 글로벌 시스템적으로 중요한 은행(G-SIB, 세계 금융 시스템에 미치는 영향이 커서 특별 규제를 받는 대형 은행) 가운데 처음으로 기관 고객에게 USDC ‘직접 발행(민팅·새 코인을 만들어 내는 절차)’과 ‘환매(리뎀션·코인을 달러 등으로 되돌려 주는 절차)’를 제공했다. USDC 발행사 서클(Circle)과 함께 만든 서비스다.
이는 상징적 조치가 아니다. 주요 스테이블코인 상품이 글로벌 은행의 운영 구조 안으로 들어왔다는 뜻이다. ‘은행 vs 가상자산 기업’의 구분은 점점 의미가 약해지고, 은행은 블록체인 기반 정산을 받아들이고 있다.
가상자산 기업은 은행을 통해 유통(고객에게 판매·공급), 수탁(자산 보관), 유동성(원활한 거래를 위한 자금), 규제 접근(인가·감독 체계)을 확보한다. 의회는 경계를 똑바로 그으려 하지만, 업계는 그 선을 흐리게 만들고 있다.
지연이 실제로 치르는 비용
규칙을 정하려는 곳은 미국만이 아니다.
유럽연합(EU)의 MiCA(가상자산 시장 규제, 암호자산 발행·유통을 포괄적으로 규율하는 제도)는 7월 1일 전면 시행돼 27개 회원국의 인가 체계를 하나로 묶었다. 홍콩과 싱가포르는 2026년에 워싱턴보다 더 빠르게 움직였다.
그렇다고 미국이 디지털 자산에서 영구적으로 밀린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미국 자본시장은 여전히 너무 크다. 다만 CLARITY 법안이 매달 멈춰 있는 동안, 다른 지역은 투자·인가·인재를 끌어올 기회를 얻는다. 인가가 나는 곳으로 자본이 따라가는 만큼, 그 자금이 갈 곳이 미국 밖에도 생긴다.
당장의 비용은 더 현실적이다. 기업은 규정이 충분히 명확해 계획이 가능한 곳에서 상품을 출시하고, 인가를 신청하며, 자본을 배분한다.
지연이 길어질수록 다른 지역이 “사업하기 쉬운 곳”이 될 가능성이 커진다. 규제 불확실성은 개발과 자본 이동을 멈추지 않는다. 개발이 일어나는 장소를 바꾼다.
비트코인의 다음 움직임은 워싱턴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입법 논쟁은 산업의 장기 구조에는 중요하다. 하지만 향후 몇 주 비트코인 가격에는 영향이 제한적일 수 있다. 최근 비트코인은 상원 밖의 요인으로도 압박을 받아왔다.
- 스트래티지(Strategy·옛 마이크로스트래티지)는 기업의 비트코인 매집과 가장 강하게 연결된 회사로 꼽히는데, 7월 초 약 2억1600만달러어치 비트코인을 매도했다. 이는 역대 최대 매도였고, 125억달러 ‘평가손’(보유 자산 가치 하락을 회계상 손실로 반영한 것)과 우선주 배당(우선주에 약속된 배당 지급 의무) 부담 확대가 겹쳤다.
- 현물 비트코인 ETF(상장지수펀드·거래소에 상장돼 주식처럼 거래되는 펀드)도 일부 반등 전까지 8주 연속 순유출(유입보다 유출이 많은 상태)을 기록했다. 블랙록의 IBIT가 주도하며 3거래일 동안 약 5억1000만달러가 다시 들어왔다.
- 미 연방준비제도(Fed·중앙은행)도 당장의 변수다. 다음 FOMC(연방공개시장위원회·기준금리를 결정하는 회의)는 7월 28~29일로 예정돼 있다. 연준은 4회 연속 기준금리를 3.5~3.75%로 동결했다.
가상자산을 바라보는 시야가 바뀐다
가장 큰 변화는 이미 드러났다. 가상자산은 한때 은행의 ‘대안’으로 소개됐다. 이제는 은행 자체의 일부가 되고 있다.
은행은 예금을 지키기 위해 블록체인을 도입한다. 가상자산 기업은 규모, 신뢰, 기관 자본 접근을 위해 은행과 협력한다. 스테이블코인은 그 사이에서 상품이자 압박 지점으로 작동한다.
결말은 “가상자산이 은행을 대체하는 세상”이 아닐 가능성이 크다. 은행이 가상자산 인프라를 받아들이되, 돈과 고객, 수익(이자에 해당하는 이익) 통제권을 유지하려는 방향에 가깝다.
따라서 워싱턴의 논쟁은 “가상자산이 금융 시스템에 들어오느냐”가 아니다. 그 과정은 이미 진행 중이다.
남은 싸움은, 결국 그 시스템 안에서 ‘고객 관계’를 누가 소유하느냐이다.
Tap for FAQ
CLARITY 법안이란?
CLARITY 법안은 디지털 자산에 대한 규칙을 더 명확히 하려는 미국의 입법안이다. 어떤 종류의 코인과 블록체인 사업을 어느 규제기관이 감독할지(감독 권한 배분)를 정하는 내용이 핵심이다. 하원은 통과했지만 상원에서 멈춰 있다.
은행이 스테이블코인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은행은 스테이블코인을 기회이자 위협으로 본다. 블록체인은 결제를 더 빠르고 효율적으로 만들 수 있다. 반대로 스테이블코인이 은행 계좌와 비슷한 기능을 제공하면서 수익까지 얹어주면, 예금이 은행에서 빠져나갈 수 있다.
토큰화 예금과 스테이블코인의 차이는?
토큰화 예금은 은행 시스템 안의 예금을 토큰 형태로 만든 것으로, 규제받는 은행이 발행한다. 스테이블코인은 민간 기업이 발행하는 디지털 토큰이며, 준비자산(현금·국채 등으로 쌓아 둔 담보 자산)으로 가치를 뒷받침한다. 둘 다 디지털 결제를 개선하려 하지만, 사업 구조와 규제 체계가 다르다.
CLARITY 법안이 비트코인 가격에 영향을 주나?
이 법안은 미국 가상자산 시장에 대한 장기 신뢰에는 영향을 줄 수 있다. 다만 단기 가격은 ETF 자금 흐름(돈이 들어오고 나가는 정도), 기관 수요, 연준 정책, 시장 심리의 영향을 더 많이 받는 경우가 많다.
전통 은행이 블록체인을 도입하는 이유는?
은행은 정산 속도(거래가 최종 확정되는 시간)를 높이고, 결제 과정의 마찰(중간 단계의 지연·비용)을 줄이며, 금융 인프라를 현대화하기 위해 블록체인을 활용한다. 블록체인이 은행을 대체하기보다, 기존 금융 시스템에 점점 통합되는 흐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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