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메르츠방크는 미국 인플레이션(물가상승률)이 다시 오르고 에너지 가격이 높아지면서, 차기 연준(Fed·미 중앙은행) 의장인 케빈 워시가 조기 금리 인하를 실행하기가 더 어려워질 수 있다고 밝혔다. 물가 상승 압력이 오래 지속되면 연준이 긴축(금리를 높게 유지해 물가를 잡는 정책) 기조를 더 오래 이어갈 수밖에 없어, 완화(금리를 낮춰 경기를 돕는 정책) 여지가 줄어든다는 설명이다.
은행은 당분간 중앙은행들이 에너지 가격 급등을 ‘일시적 요인’으로 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다만 호르무즈 해협이 계속 봉쇄되고 에너지 가격이 높은 수준을 유지하거나 더 오르면, 미국 인플레이션이 다시 높아지고 기대인플레이션(향후 물가가 오를 것이라는 시장·가계의 예상)도 상승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또 일부 FOMC(연방공개시장위원회·연준의 금리 결정 기구) 위원들이 이미 물가 압력에 대한 우려를 제기했다고 지적했다. 인플레이션이 높게 유지되는 기간이 길어질수록 금리 인하를 단행하기가 더 어려워진다고도 했다.
코메르츠방크는 정책 전망이 호르무즈 해협을 둘러싼 상황 전개에 달려 있다고 밝혔다. 최근 인플레이션 지표로 인해 워시가 단기간에 금리 인하를 이끌 수 있을지에 대한 의구심이 커졌고, 이런 배경이 달러 강세를 지지했다고 평가했다.
최근 물가 지표가 시장 예상보다 더 높게 나오면서, 워시는 신뢰도 측면에서 큰 시험대에 올랐다는 평가가 나온다. 전날 발표된 4월 CPI(소비자물가지수·가계가 체감하는 대표 물가 지표)는 전년 대비 3.9% 상승해, 여름 금리 인하 기대를 약화시켰다. 물가 압력이 지속되면서 당분간 통화정책 완화 추진이 쉽지 않다는 의미다.
이번 물가 상승은 지정학적 긴장과 그에 따른 에너지 가격 영향이 크다는 분석이다. 호르무즈 해협이 유조선 통행에 닫힌 상태가 이어지면서, 브렌트유(국제 유가 대표 지표)는 배럴당 115달러를 웃도는 수준에서 내려오지 않고 있다. 에너지 비용 상승은 운송·제조·전기요금 등 경제 전반 비용을 밀어올려 물가를 자극한다. 이 같은 상황이 길어지면 중앙은행들이 더 이상 ‘일시적 충격’으로 보기는 어렵고, 워시가 금리 인하를 밀어붙이기 힘들어질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시장은 빠르게 반응했다. CME FedWatch Tool(미국 시카고상품거래소의 금리 인하·인상 확률 추정 도구) 기준으로 7월 FOMC 회의까지 금리 인하가 단행될 확률은 한 달 전 70%를 넘었지만 현재는 15% 미만으로 급락했다. 이는 투자자들이 올해 남은 기간 연준이 더 매파적(금리를 높게 유지하려는 성향)일 수 있다고 보고 포지션을 바꾸고 있음을 시사한다.
2025년 하반기에 나타났던 디스인플레이션(물가 상승률이 둔화되는 흐름)은 사실상 멈춘 것으로 보인다는 평가도 나온다. 인플레이션이 ‘고착화’(높은 물가 상승이 구조적으로 오래 지속되는 현상)될 수 있다는 일부 FOMC 위원들의 우려가 현실화될 가능성이 커졌다는 것이다. 인플레이션이 높은 상태가 오래 갈수록 연준이 정책을 바꾸기 더 어려워진다.
금리가 ‘높은 수준에서 오래’ 유지될 것에 베팅하는 전략이 유리해 보인다는 시각도 제기된다. 미 국채선물 풋옵션(기초자산 가격이 하락할 때 이익이 나는 옵션) 거래가 늘고 있는데, 투자자들이 채권 가격 추가 하락(즉 금리 상승 또는 고금리 지속)을 예상하고 있다는 뜻이다. 이는 인플레이션 지표가 연준의 선택 폭을 좁히고 있다는 시장 판단을 반영한다.
이런 환경은 다른 주요 중앙은행들이 상대적으로 완화 쪽으로 기울 가능성이 있는 가운데 달러에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 정책 차별화(미국은 고금리 유지, 다른 나라는 완화 등으로 금리 방향이 갈리는 현상)가 나타나면 달러가 강세를 보이기 쉽다는 의미다. DXY(달러지수·달러의 가치를 주요 통화 바스켓으로 나타낸 지표) 콜옵션(기초자산 가격 상승 시 이익이 나는 옵션) 매수로 이를 활용하려는 수요가 나올 수 있다는 관측도 있다. 달러는 위험회피(불확실성이 커질 때 안전자산 선호가 강해지는 현상)와 매파적 연준의 수혜를 받을 수 있다는 평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