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핵심 요약
- 미 달러의 전 세계 외환보유액(각국 중앙은행이 비상시에 쓰려고 쌓아두는 외화 자산) 비중은 2001년 72% 정점에서 2024년 말 57.8%로 낮아졌다.
- 탈달러화(거래·결제·보유에서 달러 의존을 줄이는 흐름)의 심각도는 10점 만점에 4점 수준으로 평가된다. 구조적(한두 사건이 아니라 제도·관행이 바뀌는) 추세가 빨라지고 있지만 아직 ‘위기’ 단계는 아니다.
- 각국 중앙은행은 금 보유를 크게 늘렸고, 2022~2024년 매년 1,000톤 이상을 순매입했다.
‘과도한 특권’은 줄어들고 있다. 그렇다면 미국의 시대는 끝났나?
지난 약 80년간 미국은 다른 나라가 누리지 못한 이점을 누려왔다. 미국은 세계가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돈(달러)을 찍어낼 수 있었고, 어느 나라보다 낮은 금리로 빚을 낼 수 있었으며, 다른 나라였다면 위태로웠을 재정적자(정부 지출이 세금 수입보다 많은 상태)를 이어가도 다음 날 글로벌 금융시스템이 여전히 달러 중심으로 돌아갔다. 프랑스는 이를 ‘과도한 특권(Exorbitant Privilege, 달러 기축통화 지위에서 나오는 과도한 이익)’이라 불렀고, 세계는 그 현실을 받아들였다.
이 특권이 당장 끝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천천히, 그러나 구조적으로 약해지고 있으며, 시장은 이 변화를 점점 가격에 반영하기 시작했다.
탈달러화 이해하기: 3중 ‘독점’이 흔들린다
탈달러화는 단일 사건이 아니라 과정이다. 글로벌 금융에서 달러가 갖고 있던 ‘3중 독점’이 서서히 풀리는 흐름이다. 달러는 ① 중앙은행이 보유하는 핵심 준비통화(위기 시 결제·방어에 쓰는 통화), ② 국제무역 결제의 주된 통화(특히 원유와 원자재), ③ 국채 등 국가의 빚(국가채무) 시장에서 가격을 표시하고 거래를 맞추는 기준(기준 통화·단위)이었다. 탈달러화는 달러를 한 번에 다른 한 통화로 대체한다기보다, 이런 3가지 영역에서 달러의 ‘독점성’을 조금씩 분산시키는 변화가 동시에 여러 갈래로 진행되는 것을 뜻한다.

탈달러화가 ‘무엇이 아닌지’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이는 음모론이 아니다. 단번에 끊어내는 결별도 아니다. 당장 눈앞의 붕괴도 아니다. 20년 넘게 쌓여온 장기적 구조 변화이며, 최근에는 워싱턴(미국 정부)의 정책 선택으로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
왜 이런 변화가 나타나나
가장 큰 ‘촉진 요인’(속도를 높인 계기)은 2022년 2월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러시아의 외환보유액을 동결한 조치였다. 외환보유액은 중앙은행이 보유한 달러·유로 같은 외화 자산이다. 미국은 이 결정으로, 해외에 보관된 달러 자산이 워싱턴의 판단에 따라 사실상 ‘사용 불가’가 될 수 있음을 전 세계 정부에 보여줬다. 러시아의 달러 보유 비중은 제재 전 준비자산의 41.5%에서 2024년 말 13~18% 수준으로 급감했다. 신호는 모스크바를 넘어 더 넓게 전달됐다.
| 자산 구분 | 2022년 1월(제재 전) | 2025년 1월(조정) | 2026년 1월(현재) |
| 총 보유액 | 약 6,300억 달러 | 약 6,090억 달러 | 7,691억 달러(사상 최고) |
| 금 비중 | 21.50% | 약 26% | 약 43.0% |
| 미 달러 | 20.90% | < 5%(실제 운용분) | 약 0%(실제 운용분) |
| 유로 | 32.10% | 약 10%(실제 운용분) | 약 0%(실제 운용분) |
| 중국 위안화 | 17.10% | 약 30% | 약 32~35% |
그 뒤로 대응은 다층적으로 번졌다. 2025년 1월까지 러시아와 이란은 사실상 양국 간 무역에서 달러 결제를 거의 끝냈고, 양국 교역의 95% 이상이 루블과 리알로 결제됐다. 중국의 국경 간 은행결제 시스템인 CIPS(위안화 기반 국제결제망)는 2025년 약 180조 위안 규모의 거래를 처리했는데, 달러로는 약 25~26조 달러에 해당한다. 이는 달러 중심의 SWIFT(국제은행간 통신·결제 메시지 네트워크) 외에 대체 결제 경로가 커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각국 중앙은행은 2022~2024년 매년 금을 1,000톤 이상 사들였다. 이는 이전 10년 평균의 2배가 넘는다. 2025년에도 863톤을 추가 매입하며 준비자산 다변화(한 자산·한 통화에 쏠리지 않게 분산하는 전략) 흐름을 강화했다. 국제통화기금(IMF, 각국 외환·금융 안정 지원 기구) 통계에서도 달러의 전 세계 외환보유액 비중은 2001년 72%에서 2024년 말 57.8%로 떨어졌다.

이 변화의 대부분은 점진적이고 제도 중심으로 진행돼 왔지만, 최근 지정학적 사건들이 실제 무역 결제에서 대안의 ‘가동’을 늘리고 있다.
페트로달러(원유 달러결제 체제)에 가해지는 압력: 호르무즈 해협 통행료
전쟁 중 이란 혁명수비대(IRGC)는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는 원유 운반선과 LNG(액화천연가스) 운반선에 최대 선박당 200만 달러의 통행료를 부과하기 시작한 것으로 전해졌다. 결제 방식도 달러가 아니라 비트코인(블록체인 기반 가상자산), USDT(달러 가격에 연동되도록 설계된 ‘스테이블코인’, 가격 변동을 줄인 가상자산), 또는 CIPS를 통해 쿤룬은행으로 보내는 중국 위안화를 요구했다. 이란 의회가 2026년 3월 30일 ‘호르무즈 해협 관리 계획’에 이를 명문화했다는 보도도 나왔다. 현재 하루 약 2,100만 배럴의 원유가 해협을 통과하는 것으로 추정되며, 통행료 수입은 월 6억~8억 달러로 계산된다. 달러는 단순히 ‘우회’된 것이 아니라 ‘배제’됐다.
이는 단발성 도발로 보기 어렵다. 수년간 커져 온 결제 인프라가 가장 중요한 원유 ‘병목 지점’(전 세계 물류·에너지가 집중돼 통제력이 커지는 좁은 통로)에서 실제로 활용된 사례이기 때문이다. 예멘 후티 반군이 홍해에서 선박에 비용을 부과한 사례가 ‘전례’가 됐고, 이란은 이를 더 밀어붙였다. 결과적으로 1973년 이후 원유 거래에서 달러 결제가 사실상의 규칙이었던 페트로달러 체제가 ‘유일한 선택지’가 아니라는 점이 드러났다.
탈달러화가 이어지면 미국에는 무엇이 달라지나
달러의 준비통화 지위는 관념이 아니라 미국 영향력의 핵심이다. 세계 무역이 달러에 의존하는 만큼, 미국 경기가 약해도 달러와 달러 자산(미 국채 등)에 대한 수요가 꾸준히 생긴다. 이 수요 덕분에 미국 정부는 더 낮은 비용으로 돈을 빌리고, 재정적자를 당장 시장 압박 없이 감내하며, 세금만으로는 부족한 지출을 보완할 수 있었다.
이 기반이 약해지면 파급은 빠르게 누적될 수 있다. 해외의 미 국채 수요가 줄면 금리가 전반적으로 올라 주택담보대출, 기업 대출, 정부 차입 비용이 함께 상승한다. 준비통화 역할이 약해지면 달러 약세 압력도 커져 수입 물가가 오르고 인플레이션(물가 상승)이 자극될 수 있다. 특히 미국의 금융 제재는 달러 사용이 넓기 때문에 효과가 컸는데, 달러를 대체하는 결제망이 커지면 제재의 영향력도 약해진다.
실제로 얼마나 심각한가
그럼에도 달러의 지배력은 여전히 압도적이다. 1~10점(10이 최악) 척도로 보면, 현재 탈달러화는 대략 4점이다. 실제로 진행 중이고 구조적이며 속도도 붙고 있지만, 위기와는 거리가 있다.
지표를 보면 달러는 여전히 ‘주인공’이다. BIS(국제결제은행, 중앙은행들의 협력기구)의 2025년 3년 주기 조사(트라이애니얼 서베이)에 따르면 달러는 전 세계 외환거래(통화를 서로 바꾸는 거래)의 약 89%에 관여했다. 2022년보다 소폭 높다. 리우에서 열린 BRICS(브라질·러시아·인도·중국·남아공 중심 신흥국 협의체) 정상회의에서도 탈달러화가 핵심 의제로 부각되지 않았고, 인도는 달러가 글로벌 안정의 축이라며 대체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 중국 위안화는 자본통제(자금의 해외 유출입을 정부가 제한하는 제도)로 확장에 한계가 있다. 당분간 달러의 역할을 한 번에 넘겨받을 통화나 시스템은 보이지 않는다.

점수가 2점이 아니라 4점인 이유는 CIPS, mBridge(여러 나라 중앙은행이 함께 만드는 디지털 통화 기반 국경 간 결제 실험), BRICS Pay(브릭스권 결제 네트워크 구상), 디지털 위안(중국 중앙은행 발행 전자화폐), 자국통화 스왑(두 나라 중앙은행이 서로 통화를 교환해 유동성을 확보하는 계약) 같은 인프라가 이미 구축되고 있고 사라지지 않기 때문이다. 반대로 6점이 아닌 이유는 달러의 제도적 ‘해자’(시장 깊이, 법·규제 신뢰, 결제 관행 등으로 형성된 방어벽)가 여전히 매우 두텁기 때문이다.
투자 역설: 세계는 달러를 줄이면서도 미국을 산다
탈달러화 논쟁을 멈춰 세우는 숫자가 있다. 미 재무부에 따르면 2025년 해외 투자자들은 미국 금융자산을 1조5,500억 달러 순매입해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해외 투자자의 미국 주식 보유액은 21조 달러로 최고치다. 2026년 들어 미국 주식·달러·채권이 동시에 하락한 날은 9일뿐으로, 11년 만의 최저치가 될 가능성이 크다. 1990년대에는 이런 날이 연간 30~60일이었다.

세계는 미국을 떠나는 것이 아니라, 미국을 사고 있다.
이유는 탈달러화와 미국 시장 투자가 모순이 아니기 때문이다. 두 전략은 동시에 성립한다. 각국 정부는 워싱턴이 통제하는 달러 준비자산 보유는 줄이되, 세계에서 가장 경쟁력 있는 기업에 대한 지분(주식) 보유는 원한다. 미국 주식 투자는 ‘달러에 베팅’이라기보다 미국 기업 이익, 혁신, 제도적 신뢰(투자자 보호, 규칙의 예측 가능성), 시장 유동성(원하는 때에 사고팔 수 있는 정도)에 베팅하는 성격이 강하다. 경쟁 시장이 비슷한 수준의 유동성·법적 보호·수익률을 제공하기 전까지 자금은 계속 유입될 수 있고, 준비자산 운용자들은 다른 곳으로 조용히 분산할 수 있다.
세계는 제도적으로는 달러 위험을 헤지(가격 변동·정책 위험을 줄이기 위한 분산·상쇄)하면서도, 상업적으로는 미국을 신뢰한다. 이 차이는 매우 크다.
미국이 맞닥뜨린 선택
미국에는 두 갈래가 있다. 첫째는 압박이다. 달러에서 벗어나려는 국가에 고율 관세(수입품에 높은 세금을 매겨 압박하는 조치)를 경고할 수 있다. 강해 보일 수 있지만 역효과도 낸다. 이미 “미국이 달러를 무기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큰 상황에서 압박을 더하면, 대안을 더 빨리 찾게 만들 수 있다.
둘째는 더 어렵지만 장기적으로 효과적인 길이다. 달러가 다시 ‘믿을 수 있는 통화’가 되게 해야 한다. 재정을 책임 있게 운영하고, 제재는 신중히 쓰며, 시장을 개방적으로 유지하고, 글로벌 결제 시스템의 미래 구축에 참여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 공백을 중국이 채울 수 있다.
달러의 힘은 강제에서 나오지 않는다. 신뢰에서 나온다. 전 세계 투자자와 정부, 기관이 달러를 보유하는 이유는 미국이 약속을 지키고, 공정하게 행동하며, 강한 경제를 유지할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 신뢰가 시험대에 올랐다. 미국이 누려온 이점은 서서히 줄고 있다. 그 흐름이 계속될지, 다시 안정될지는 미국이 달러가 단순한 화폐가 아니라는 점을 잊지 않는지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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